한국현대미술신문 송인상 기자 | "엄마 이리 와"가 인도 타밀어로는 "엄마 잉게 와" 다 "엄마 이리 와"를 인도 타밀어로는 "엄마 잉게 와"라고 한다. 이 한 문장만 놓고 보면 타밀어와 한국어가 무척 닮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인도 현지에서 타밀인과 대화를 나눠보면,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내가 2006년 처음 인도 땅을 밟았던 첸나이는 타밀어를 모국어로 쓰는 타밀나두주의 주도다. 나의 첫 인도 진출 전시회도 타밀어를 쓰는 이 첸나이에서 열렸고, 그 이후로도 첸나이의 한인도 문화교류 거점인 인코센타(InKo Centre)에서 내 큐레이팅 전시회가 여러 차례 열린 인연으로, 개인적으로 타밀어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의 미디어에서 인도 타밀어와 한국어의 유사성이 자주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체감한 언어의 유사성은 극히 일부 단어나 문장에 한정될 뿐, 언어학적 연관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일부 유사성만으로 같은 뿌리를 가졌다거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보는 시각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학계의 대세다. 사실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현재에도 지구상에서 한국어와 가장 유사한 언어로 타밀어를 소환하면서 심지어
한국현대미술신문 송인상 기자 | 올해로 꼭 20년이다. 처음 인도 땅을 밟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인도 미술의 곁에 있었다. 이번 칼럼은 그 20년이 내게 가르쳐준 것 "인도 현대 미술 속에 면면히 살아 숨 쉬는 전통의 힘"에 관한 이야기다. 비서구권 국가의 근현대 미술을 접할 때 맞닥뜨리는 가장 큰 장벽은 오랫동안 내면화되어 온 서구 중심주의적 세계관이다. 서구 미술이 세계 미술의 표준이자 유일한 중심이라는 인식은 식민지적 근대성이 남긴 가장 질긴 도상적 흉터 중 하나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시아 국가의 미술 교육 과정에서 '세계 미술사'와 '자국 미술사'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고, 전자가 언제나 상위의 보편적 텍스트로 군림해 온 구도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술 대학 입시에서 그리스·로마 조각상이 데생의 절대적 모범으로 군림하고, 세잔(Paul Cézanne)과 피카소(Pablo Picasso)를 현대 미술의 시원이자 거장으로 암기하는 교육 체계 속에서 비서구권의 뛰어난 작가들은 늘 기이한 방식으로 호명된다. 한국의 거장을 칭송할 때 '한국의 피카소'라는 수식어를 붙이듯이, 인도 현대 미술의 거장 M.F. 후세인 역시 '인도의
한국현대미술신문 송인상 기자 |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 고요히 사색에 잠겨 있는 청동 흉상 하나가 서 있다. 이 조각상은 인도의 위대한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인도 정부와 국민이 한국에 기증한 뜻깊은 선물로, 2011년에 세워졌다. 대학로에 깃든 시성, 타고르 인도의 조각가 고담 팔(Gautam Pal)이 제작한 107센티미터 크기의 이 흉상은 단순한 시각적 기념물을 넘어, 식민지라는 근대의 아픈 상처를 함께 지녔던 두 나라가 오랜 세월 조용히 나누어 가졌던 영혼의 공명과 연대를 소리 없이 대변한다. 첫 칼럼에서 소개했던 가야국의 김수로왕과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혼인 서사가 역사적 진위를 넘어 거대한 문화적 상상력의 영감을 주었다면, 근대의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영혼을 보듬어준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은 바로 인도의 시성 타고르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燈燭)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교과서에서 가슴 뭉클하게 마주했던 이 4행의 짧은 시 '동방의 등불'은 1929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쓰였다
한국현대미술신문 송인상 기자 | 처음 인도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나를 가장 먼저 압도한 것은 소음도 특유의 향기도 아니었다. 공항 출구를 나서는 순간, 거리를 가득 채운 선명한 색의 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홍빛 사리(Sari)와 황금빛 터번, 파란 벽과 주황빛 메리골드 꽃망울의 행렬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회화였다. 한국인들은 인도를 흔히 '화려한 색채의 나라'로 기억하지만, 이는 다분히 피상적인 인상에 머무른다. 인도의 색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수천 년의 철학과 신화, 사회적 계급과 종교적 우주관이 씨실과 날실로 정교하게 짜인 하나의 문화적 언어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과 인도를 매개하는 가장 감각적이면서도 영적인 기호, 바로 '색채'를 이야기하려 한다. 스스로를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부르며 일상에서 원색을 절제하고, 명절이나 혼례처럼 특별한 순간에만 색동옷과 오방색을 꺼내 입었던 한국의 색채 감각과 비교하면, 인도의 색은 전혀 다른 결을 지닌다. 인도의 색은 일상의 전면에 살아 숨 쉬며, 매 순간 삶과 신성을 하나로 연결한다. 인도 사회의 전통적 신분 체계인 '카스트'의 본래 명칭이 산스크리트어로 '색(Color)'을 뜻
한국현대미술신문 송인상 독립 큐레이터 | 지난 20년간 인도 미술에 집중해 온 독립 큐레이터로서, 나는 일 년의 절반 가까이를 인도에서 보낸다. 주변 지인들은 그런 나에게 “그렇게 인도가 좋으냐”고 매번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인도에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나에겐 수행(修行)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와 매연, 열악한 환경이 몸을 지치게 만들 때도 많지만, 그 번잡함의 이면에는 묘한 정신적 평온함이 존재한다. 외지인이 처음 맞닥뜨리는 인도의 현실은 어찌 보면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일지 모른다. 그러나 긴 호흡으로 인도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무질서는 이내 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거울로 변모한다. 인도를 무조건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되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꾼다면, 인도는 우리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풍요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서 그간 내면 깊숙이 쌓아온 인도와 인도 미술에 관한 경험과 성찰을 나누고자 한다. 전시 기획자로서 인도와의 인연을 되돌아보고, 인도를 보다 객관적으로 사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하나가 바꾼 20년!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