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신문 배건 기자 |
관악미술협회가 주최하는 ‘位相展(위상전)’이 오는 2026년 2월 2일부터 13일까지, 서울시의회 본관 중앙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관악미술협회 고문·자문·회장단 등 협회를 대표하는 중진 작가 25인이 참여하는 자리로, 각자의 예술적 궤적과 현재의 위치를 성찰하는 의미 있는 전시다.

‘位相(위상)’이라는 전시 제목은 단순한 사회적 지위나 형식적 위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시간 속에서 축적해 온 내적 깊이, 삶과 사유가 중첩되며 형성된 존재의 좌표를 뜻한다. 이번 전시는 그 이름처럼, 작가 개개인의 삶과 태도, 그리고 회화적 언어가 어떻게 현재의 자리로 수렴되었는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상징이 어우러진 작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꽃과 생명체를 형상화한 화면은 동화적 상상력 속에서 예술과 치유, 즐거움의 본질을 환기시키며, 밝은 색면 위에 반복되는 패턴은 삶의 리듬과 순환을 은유한다. 이는 단순한 장식성을 넘어, 예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을 유쾌하게 제안한다.

반면, 또 다른 작품들은 거친 질감과 중첩된 물성으로 시간의 퇴적과 기억의 흔적을 담아낸다. 캔버스 위에 쌓인 긁힘과 균열, 흘러내린 색채는 삶의 상처이자 견뎌온 시간의 증거처럼 다가온다. 특히 토기 형상을 중심으로 한 작업에서는 문명과 생명, 역사와 인간의 흔적이 중첩되며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이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 인류 보편의 시간성과 맞닿아 있다.
수채화 특유의 투명한 색감으로 표현된 장미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겹겹이 포개진 꽃잎과 부드러운 색의 흐름은 섬세한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내면의 시선을 담아내며, 관람객에게 잠시 멈추어 숨 고를 수 있는 여백을 선사한다. 빠르게 지나치는 이미지 소비의 시대 속에서, 이 작품들은 ‘천천히 보는 행위’ 자체의 가치를 되묻는다.

이번 ‘位相展’은 하나의 스타일이나 경향으로 묶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언어와 물성을 지닌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며, 그것이 바로 관악미술협회의 현재적 얼굴임을 말해준다. 긴 시간 지역 미술의 현장을 지켜온 작가들의 작품은 유행이나 기교를 넘어, 지속해 온 태도와 책임감 있는 예술의 무게를 보여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
관악미술협회 전인애 회장은 “이번 ‘位相展’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성취의 전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오랜 시간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일수록, 그 질문은 더욱 무겁고 진지해집니다.”
이어 전 회장은 공공 공간에서 전시를 여는 의미를 강조했다. “서울시의회 본관 중앙홀은 권력과 행정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민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회화를 통해 삶과 시간, 존재에 대해 사유를 나누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술은 특정 계층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이번 전시의 바탕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관악미술협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관악미술협회는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니라, 지역과 사회 속에서 예술이 어떤 책임과 역할을 가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습니다. ‘位相展’은 그 고민의 한 지점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성찰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서울시의회 왕정순 의원(관악구)은 예술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시간 속에서 축적된 사유와 태도를 보여주는 ‘位相展’라며 “서울시의회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예술이 시민과 만나는 이번 전시는 예술이 사회와 소통하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왕의원은 “관악미술협회가 지역 미술의 현장을 꾸준히 지켜오며 보여준 예술적 책임과 지속성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앞으로도 예술과 시민을 잇는 전시에 서울시의회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위상은 직함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에서 나온다”
관악미술협회 홍사구 고문은 이번 전시의 제목인 ‘위상’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위상이라는 말은 흔히 직책이나 명예로 오해되지만, 예술가에게 있어 위상이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진실하게 자기 작업을 견뎌왔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그 시간을 통과해 온 분들입니다.”
홍 고문은 특히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다양성에 주목했다. “이 전시는 하나의 미학적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 서로 다른 언어가 한 공간에 놓여 있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시간에 대한 성실함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관악미술협회의 저력이라고 봅니다.”
“회화는 여전히 사유를 멈추게 하는 힘을 지닌다”
관악미술협회 이영희 자문은 ‘位相展’이 오늘날 회화의 의미를 다시 묻는 전시라고 평가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회화는 오히려 더 느린 매체가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이 관람객을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번 전시는 회화가 여전히 사유의 매체로 유효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합니다.” 그는 공공 전시의 의미도 강조했다.
“서울시의회라는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예술이 제도와 시민 사이를 잇는 하나의 다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술관이 아닌 공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또 다른 긴장과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공공성과 예술성이 만나는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관악미술협회 ‘位相展’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천천히 바라보고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회화의 힘을 다시금 일깨운다. 관람객에게는 작품을 보는 시간이 곧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조용하지만 깊은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